외국계 기업 HSE manager로 살아가기 - 2
▣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문제를 삼지?
공장내부를 둘러볼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음... 이거 생각보다 할 일이 많겠는데...?'
회사에 조인하기 전 대표님과 면담을 했을 때 주고받았던 대화가 생각난다. 대표님께서는 그전에 HSE 업무를 담당했던 팀장이 타업무와 HSE업무를 같이 처리할 정도니 생각만큼 일이 많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니 일이 많지 않은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아인에 영화 '베테랑'에서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장소가 그렇다. 인명피해가 있을 정도의 큰 사고건은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제대로 된 정부기관의 점검이나 감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내 눈엔 위험하고 문제가 될만한 것들도 그들 눈에는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니 문제를 삼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사고 하나 터지면 과태료, 벌금 맛집되겠는데...'
물론 이전에 HSE업무를 담당했던 팀장님이 일부러 일을 쳐내지 않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른 업무를 메인으로 담당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안전이나 환경을 전공하지 않은 분이었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이제는 내가 HSE 팀장이니 그냥 이 상태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공장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고 고압가스탱크와 세정탑, 흡착탑 등이 있는 공장 외곽으로 이동하며 이것저것 챙겨야 할 일들을 살펴보는데 각 설비들의 계기류 특히 압력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새로 설치한 것들이라 깨끗하긴 한데 정상운전범위나 안전밸브 작동 압력은 표시가 안되어 있는 게 아쉽군.'
압력계에 운전범위나 안전밸브 작동개시 압력을 식별할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면 오퍼레이터들이 이상상황을 파악하거나 보전활동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 "공장장님, 여기 압력계들은 정상운전범위 정도라도 표시를 좀 해두면 도움이 될 겁니다."
공장장: "아 그렇죠? 나도 전에 있던 회사에서는 그렇게 관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장장님도 이 회사로 이직한 지 2년이 채 안된 분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여기저기 외국계 기업에서 생산팀 위주로 담당을 했던 분이었다고 한다.
공장장님의 대답을 듣고 관련 팀장이 누군지 둘러보았다. 일반적으로 공무팀이나 관련 생산공정의 생산팀장이 담당을 하지만 여기는 생산팀안에 공무를 담당하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근처에 서있던 생산팀장에게 말씀을 드렸다.
나: "팀장님, 여기 압력계 위에다가 간단하게 스티커 같은 거 붙여서 운전범위 표시만 해주셔도 관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생산팀장: "네? 그런 것도 해야 되나요? 우린 여태 그런 거 해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그건 안전에서 해주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안전과 관련된 문제잖아요?
'응??? 이건 무슨 신박한 생각이지?'
순간 내가 들어와서는 안될 곳을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력계 위에 운전범위 표시하는 거야 어려운 것도 아니고 내가 설비도면과 매뉴얼 찾아서 표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생산팀장의 한마디에서 이곳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안전은 생산과 별개의 일이라는 관리자의 마인드
무엇부터 건드려야 하는지 대충 견적이 나온다 그리고 험난한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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